결국 선택의 주인은 국민이었다,
그 시절 우리들의 대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6주기 계기 ‘플레이 2002 : 노무현 캠페인, 다시 접속하다’ 시리즈2
2002년 대선은 드라마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작은 국민참여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시키는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했습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며 치러진 이 경선은 숱한 화제와 반전으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중심에는 최약체 후보 노무현과 그를 지지하던 자발적 시민들의 모임 ‘노사모’가 있었습니다. 첫 경선지 제주에서 3위로 출발한 노무현 후보는 4월 27일,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유례없는 시민 참여 열기로 대통령 후보에 당선됐지만 ‘꽃길’은 없었습니다. 지지율 하락과 후보 흔들기, 당내 분열이 지난하게 이어졌고 특히 10월에 접어들면서는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11월 3일, 노무현 후보는 정 의원 측에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협상은 방식에 대한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습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노무현 후보 자신이었습니다. 상대편에서 내건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를 당황시킬 만큼 전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지지자로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후보 통합 아닌 유권자 통합…결국 국민이 단일화 만들어 줄 것”
거센 단일화 요구의 한복판에서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단일화 방식 수용 입장을 공식화했던 11일, 광주에서 전주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노무현 후보가 ‘라디오로’와 했던 전화 인터뷰 일부를 소개합니다. 노무현사료관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노 대통령 육성 기록이기도 합니다.
“우선 첫 번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확실하게 이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후보 단일화라는 것은 통합과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우리의 후보 단일화는 후보 통합이 아니라 유권자 통합입니다. (중략) TV토론을 살려서 국민들과 우리 지지자들이 충분히 검증을 하고 선택이 가능하게 하면 국민들이 단일화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상대방의 안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승리를 상위 목표로 두고 유권자 통합 관점에서 단일화를 보자는 합리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노 후보 측이 당초 제안했던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직접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검증 수단으로 TV토론이라도 열어두자는 현실적 고려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국민들의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선택에 대해서 그동안 저를 지지해 오신 분들은 후보의 정책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단일화가 있을 수 있느냐 이렇게 판단하고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유권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지 세력을 확대해가면서 단일화로 한 발 한 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양보도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중략) 국민들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후보는 단일화되지 않는 결과가 되더라도 유권자들은 통합되는 결과로 갈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일화 요구에 응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단일화 방식까지 양보해야 하냐는 지지자들의 불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합의의 과정 또한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는 게 노무현 후보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어 노 후보는 “단일화 과정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에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갈 수 있다”며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라디오로] 11월 11일 노무현 후보 전화 인터뷰 ☎바로가기
방식은 정해졌지만 세부적 조율에 관한 줄다리기는 계속됐습니다. 15일 밤, 결국 두 후보가 직접 만났습니다.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자정을 넘긴 16일 새벽. 당일 오후 라디오로는 선대위 발대식 참석을 위해 대구를 찾은 노무현 후보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단일화한다 또는 통합한다는 협력이 있을 때 보통은 이해관계를 먼저 따지고 이익을 적당하게 나누는 흥정과 분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우에는 그와 같은 이해관계의 흥정과 분배에 관한 약정은 전혀 없습니다. 두 사람만이 밀실에 앉아 합의하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단일화하라는 국민들의 표출된 요구를 충분히 확인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누구로 하냐는 결정도 공개적으로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서 국민들에게 맡기겠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합의는 합의이지만 절차와 과정에 관한 합의로서 어디까지나 국민들을 존중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합의와는 좀 다르게 평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디오로] 11월 16일 노무현 후보 전화 인터뷰 ☎바로가기
이후에도 협상은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차례 위기와 협상단 재구성이라는 진통 끝에 11월 22일, 후보 단일화 합의문이 발표됐습니다. 같은 날 두 후보의 TV토론도 KBS·MBC·SBS·YTN 등 방송 4사 생중계로 국민 앞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론조사일인 24일이 다가왔습니다. 이날 라디오로를 진행하던 김갑수 씨의 말에서 당시 지지자들의 간절함과 각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11월 24일입니다 이제 운명의 날입니다. 진짜 오늘 중요한 날입니다. (중략) 우리가 지켜야 될 행동수칙들에 대해서는 낮에 방송할 때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론조사 한번 전화 받았다고 해서 안심하고 나갈 건 아니다, 여론조사가 하도 많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다려야 되고 계속해서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전화 옆에 딱 있도록 열심히 작업을 해야 된다는 얘기죠. 그 작업할 때는 전화비가 좀 들더라도 휴대폰을 이용해서 집 전화는 통화 중이지 않도록...통화 중이면 다른 사람으로 넘어간다고 그랬습니다. 알고 계시죠? 불가피하게 나갈 일이 있을 땐 꼭 착신 전환시켜 놓고 나갔다 올 것. (중략) 박빙의 차이로 이기면 분명히 불복할 것이다. 그런 시비를 말끔하게 없애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많은 표 차이로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되겠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운명의 날이 지나고 25일 새벽,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라디오로는 새벽까지 축하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기쁨과 흥분으로 잠 못 드는 밤이었습니다. 몇 시간 후면 출근이었지만 지지자들은 기꺼이 방송과 함께 깨어있기를 택했습니다. 전화 연결 사연 몇 대목을 소개합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풍성한 거 있잖아요. 몸이 좀 피곤한데 불구하고 진짜 뉴스를 보면서 너무 많이 울어가지고 하여튼 오늘 천당과 지옥을 가보진 않았지만 이런 기분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중간중간 뉴스를 들으면 너무 떨리고 조바심 날 것 같아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어요. 희망돼지 잠깐 분양하고요, 기도하는 마음 있죠? 그런 마음이 돼가지고 지하철역이나 불쌍하신 분들 지나다니시잖아요. 그때마다 계속 도와드리고 속으로는 꼭 오늘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저녁 때 정말 피 말리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밀봉된 봉투가 도착했습니다’ 이러면서 밀봉된 봉투 따는데 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경선 때는 그래도 눈에 보이는 상대들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참여해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실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었어야 되니까 그것들이 더 힘들고 더 불안하고 그랬었나 봐요, 많은 사람들이.”
선거 전야 단일화 파기…그래도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
그렇게 매듭지어진 듯했던 단일화였지만 모두 아시는 것처럼 마지막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월 18일 밤, 투표를 약 8시간 남겨두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발표한 겁니다. 이 충격적인 소식 앞에 망연자실해지기도 잠시, 시민들은 빠르게 각자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문자, 전화로 투표 독려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로는 철야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유시민 당시 개혁국민정당 대표가 라디오로와의 전화 연결에서 청취자들에게 전한 당부입니다.
“지나치게 패닉 상태에 빠지지 마십시오. 노 후보가 정몽준 씨의 말하자면 우리가 구태정치에서 흔히 보던 자리 나누기라든가 밀약 요구 이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노 후보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청취자들께서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하시고 주변 분들에게 전파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의 눈을 제공하고 그렇게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흥분하지 마시고 두려워 마시고 우리는 우리 길을 가면 됩니다.”
새벽이 되어서는 배우 명계남 씨와 문성근 씨가 라디오로 스튜디오를 찾습니다. 2000년 총선을 계기로 처음 인터넷을 알게 되어 노사모에 가입했다는 명계남 씨는 “요새는 인터넷 게임도 하고 있는데 꼭 우리가 무슨 인터넷 게임하는 것 같아요. 스테이지 1 격파하면 또 스테이지 2가 나타나고 스테이지 2 또 격파하면 스테이지 3...”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우리 노짱은 국민이 선택할 때는 항상 승리했습니다.”는 말로 대선 승리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어진 문성근 씨의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사가 지금 이 단계에 있고 이 단계에서 우리가 발전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그런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우린 살고 있고, 우린 벽을 문이라고 생각하고 열고 나가는 그런 자세를 여전히 갖고 있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단일화 파기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도 국민의 지지와 참여를 가로막는 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지지자들은 밤새 방송을 통해 불법 유인물 현황을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선택의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불법 유인물이 엄청나게 뿌려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단일화 결렬 흑색선전 유인물이 뿌려지고 현수막이 붙고 있는 모양인데 밤 12시 이후에 뿌려지는 유인물이나 붙어있는 현수막은 모두가 불법입니다. 여러분, 불편하시더라도 동네에 가까운 분들 몇 분 연락해서 한 바퀴만 돌아주십시오. 그런 다음에 불법 유인물 꼭 철거하신 다음에 선관위와 우리 상황실로 신고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이날 철야 방송의 편집본은 아래 링크 28분 32초부터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라디오로] 노무현 라디오 방송국 – 그때 그 방송 ☞바로가기
“노무현의 승부수는 항상 성공했다”
앞서 소개드린 11월 11일 인터뷰에서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입니다. 승부수는 던져졌고 승부사는 자신이 약속했던 원칙을 지켰습니다. 단일화 주요 국면마다 이해득실 보다는 대의를, 흥정 보다는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 또한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는 믿음이 승부사 노무현의 진정한 승부수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의 승부수를 끝내 성공으로 완성한 건 고민하고, 행동하고, 결국 선택했던 국민이었습니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두 편의 사료이야기를 함께 읽어보실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사료이야기] 16대 대선 그 숨막힌 싸움..노무현의 선택과 국민의 선택이 만났다 ☞바로가기
[사료이야기] 단일화 합의 이후에도 드라마..소신과 원칙 선택한 국민 ☞바로가기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클릭] 16대 대선백서☞바로가기